서울 중구 · 역사·문화

사진: 한국관광공사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정동) |
|---|---|
| 운영시간 | [일반관람] - 09:00~21:00 (입장마감 20:00)[전시관]- 석조전 09:30~17:30 (마지막 해설 16:30)- 돈덕전 09:00~17:30 (입장마감 17:00)- 중명전 09:30~17:30(입장마감 17:00) |
| 쉬는 날 | 매주 월요일※ 단, 정기휴일이 공휴일 및 대체공휴일과 겹칠 경우에는 개방하며, 그 다음의 첫 번째 비공휴일이 정기휴일임 |
| 주차 | 불가능 |
| 문의 | 02-771-9951 |
덕수궁은 1897년에 선포된 황제국,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옛 이름은 경운궁이다. 덕수궁은 원래 조선 제 9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고, 그 후에도 월산대군의 후손이 살던 곳이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도성의 궁들이 모두 소실되자 1593년(선조 26)부터 임시 궁궐로 사용하여 정릉동 행궁(貞陵洞 行宮)이라 불렸다.
이후 1611년(광해군 3) 경운궁(慶運宮)으로 이름이 정해지면서 정식 궁궐이 되었다가, 창덕궁이 중건되면서 다시 별궁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1897년(광무 1)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황궁에 맞게 규모를 확장하고 격식을 높였으며, 궁궐 내 서양식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전통 건축물과 서양식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1904년(광무 8) 대화재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고, 1907년 일제에 의해 고종이 황위에서 물러나자 궁의 이름이 덕수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덕수궁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었다. 동시에 공원화가 진행되어 궁궐로서의 면모를 잃게 되었다. 1946~47년에는 덕수궁 석조전에서 제1·2차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후 덕수궁의 복원이 꾸준히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 출입 동선 | 접근로에 경사가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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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구 | 주출입구 무단차관람 동선 내에 전각마다 경사로 설치되어 있음 |
| 화장실 | 장애인 화장실 있음(석조전 좌측,정관헌 좌측) |
| 휠체어 대여 | 수동휠체어 있음(3대/출구 쪽 사무실) |
| 유모차 | 유모차 대여 가능함(4대, 안내센터 측면) |
대한문(大漢門)은 덕수궁의 정문으로 ‘대한’은 “한양이 창대해진다”라는 뜻이다. 원래 경운궁의 정문은 남쪽에 있었던 인화문(仁化門)이었으나, 동문인 대안문(大安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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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공원은 서울의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간이다. 이곳은 조선 시대의 경희궁을 중심으로 조성되었으며,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함께 다양한 식물들이 조화를
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이다. 원래 경희궁으로 들어가는 문읜 5개로, 정문인 흥화문 외에도 동쪽에 흥원문, 서쪽에 숭의문, 남쪽에 개양문, 북쪽에 무덕문이 있었다.